인간의 손끝과 기계의 상상 사이

"이건 삶 자체에 대한 모욕입니다."
2016년 NHK 다큐멘터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AI가 만든 애니메이션 시연 영상을 본 직후, 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끝은 떨리고, 표정에는 불쾌함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이 한마디는 당시 일본 내에서, 그리고 이후 전 세계 창작자 커뮤니티에서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오늘날, 생성형 AI는 예술의 경계를 넘어 창작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회화, 문학, 음악은 물론 영상 제작과 캐릭터 디자인까지 — 알고리즘이 학습을 통해 인간의 감각과 표현을 '모방'해내고 있죠. 그 흐름 한가운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AI의 창작 능력과 그 윤리성에 대해 가장 강한 비판을 던진 인물 중 하나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견해를 중심으로 AI 창작이 지닌 철학적·사회적 질문을 정리하고,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 창작 생태계의 방향성에 대해 함께 고찰해보려 합니다.
콘텐츠 핵심 요약
🎬 핵심 장면 | 2016년 NHK 다큐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AI 생성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건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발언 |
🧠 창작 철학 | 창작은 ‘고통을 통과한 감정’에서 비롯되며, AI는 그것을 경험할 수 없다고 지적 |
✍️ 수작업 고수 | "애니메이션은 인간의 손끝에서 탄생한다"는 신념, 연필과 종이를 통한 창작 강조 |
🤖 AI 비판 | AI는 감정을 모방할 순 있어도 체험할 순 없으며, 이는 창작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음 |
🧾 라이선스 문제 | AI가 지브리 스타일을 학습해 창작물로 수익을 내는 상황에 대한 윤리·법적 우려 |
🛠️ 제도 필요성 | 데이터 수집 동의, 생성물 출처 명시, 창작자 수익 보장 등 제도적 장치 필요 |
🌱 향후 제안 |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기보다 ‘도움’이 되어야 하며, 창작자의 권리 중심 질서 구축 필요 |
창작의 본질: 인간의 고통과 경험
2016년 방영된 NHK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는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에서는 그의 은퇴 이후 복귀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일본의 한 기술팀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3D 애니메이션 실험 영상을 미야자키 감독에게 보여주었고, 이 장면은 이후 AI 기술 윤리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었습니다.
영상에는 인간형 생명체가 기괴한 자세로 움직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고, 이를 시연한 연구자는 "재활 프로그램이나 공포 게임에 적용 가능할 것"이라며 기술적 가능성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감독은 단호하게 반박했습니다.

이걸 만든 사람은 고통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네요.
저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이건 그 존재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의 이 발언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이는 창작이란 무엇인가, 창작자란 누구인가, 그리고 예술이 지닌 윤리적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선언입니다. 기술자들은 '실험적 재미'와 '창작 보조 도구'로 설명했지만, 미야자키 감독에게 그것은 인간 존재를 대상화하고, 감정을 수치화하며, 상처를 기계적으로 가공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는 창작이란, 인간의 몸과 감정, 그리고 '살아낸 경험'이 녹아들어야만 가능한 영역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날로그에 담긴 예술의 가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평생 수작업 중심의 애니메이션을 고집해온 창작자입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 대부분은 손으로 직접 그린 수천 장의 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으며, 디지털 도구는 최소한으로만 활용됩니다.

애니메이션은 연필과 인간의 손으로 그려져야 진짜 생명이 담깁니다.
기계가 그린 것에는 감정이 없어요. 단순한 계산일 뿐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고집이 아닙니다. 그의 철학은 '예술은 인간의 불완전함 속에서 탄생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수작업 특유의 어긋남, 선의 떨림, 감정에 따라 바뀌는 색감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창작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요소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디지털 도구가 주는 효율성과 시각적 완성도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감독에게 '창작의 본질'은 속도가 아닌 정체성이며, 산출물이 아닌 과정에 있습니다. 이 관점은 오늘날 빠른 결과물만을 추구하는 창작 환경에 중요한 성찰을 제공합니다.
창작 주체성의 문제: AI는 창작자인가, 도구인가?
최근 몇 년 사이, 생성형 AI의 능력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GPT 모델은 소설을 쓰고, Midjourney와 같은 이미지 생성기는 화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해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텍스트 프롬프트 몇 줄로 완성되는 이 창작물들은 종종 인간이 만든 것보다 더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발생합니다.
이 AI 창작물은 '창작'인가? 아니면 '재조합'인가?
이 기술들은 대부분 웹상에 공개된 이미지, 소설, 영화 등을 무단으로 수집하여 학습합니다. 그 안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며, '지브리풍 스타일'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색감, 구도, 캐릭터 감수성을 그대로 모방한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AI는 창작자일까요, 아니면 복제자일까요? 만약 후자라면, 그 창작물은 누구의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철학적 논의가 아닙니다. 법적, 산업적, 문화적으로 AI 창작물의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기존 창작자들의 권리와 시장은 급속히 붕괴할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AI 창작물과 라이선스의 윤리
AI가 지브리 스타일을 학습해 만든 이미지가 NFT로 팔리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태워 수백만 뷰를 얻는 시대입니다. 문제는, 이런 이미지의 '기반'이 되는 수많은 원본 창작자들이 이 과정에 아무런 통제권도, 수익도 갖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Midjourney에 "지브리 스타일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소녀와 고양이의 일러스트"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그 결과물을 상업적으로 판매했다면, 이는 명백한 '스타일 도용'이자, 창작자 권리 침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법제도는 이러한 영역을 명확히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AI의 학습 데이터는 '공개된 정보'라는 이유로 대부분 무단 수집되고 있고, 생성된 이미지에 대한 권리도 애매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에는 다음과 같은 라이선스 기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데이터 수집의 동의 기반 강화 | AI가 학습하는 모든 창작 데이터에 대해 창작자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며, 데이터 출처를 명확히 기록해야 함 |
생성 콘텐츠의 출처 및 AI 표기 의무화 | 생성된 이미지나 텍스트가 AI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원본 창작자와의 관련성을 투명하게 밝혀야 함 |
창작자 중심의 수익 배분 모델 도입 | AI가 창작자의 스타일이나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할 경우, 일정 비율의 로열티 혹은 보상이 창작자에게 돌아가야 함 |
이러한 원칙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AI 기술이 '윤리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인간 창작의 미래 방향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철학은 단순히 AI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의 감정, 손의 떨림, 기억의 흐릿함 같은 '비정형성' 속에 진짜 창작의 씨앗이 있다고 믿습니다. 기계는 이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술이 가능한 것과, 윤리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창작자 없는 창작물, 동의 없는 학습, 수익 없는 수많은 창작자들... 이것은 단순히 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됩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돕는 방식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철학과 감정을 존중하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마무리하며

"삶의 고통을 모르는 기계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
이 말은 단지 AI 비판을 위한 감정적 문장이 아닙니다.
그는 창작의 '본질'을, 기술의 '한계'를,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AI 시대, 우리는 더 이상 기술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술의 방향은 우리가 정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이 '창작자 중심의 길'이 되길,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의 고통과 감정, 그리고 꿈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술은 발전하겠지만, 결국 진정한 창작의 가치는 인간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떨림과 상상력에 있을 것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평생 지켜온 이 가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소중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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